황선용 형은 얼마 전 작고하셨습니다.
형은 심성이 여린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유신 시절 ‘문화 레지스탕스’ 운동에 나섰습니다.
박정희의 유신시대는 긴급의 시대였습니다.
박정희는 제멋대로 긴급조치라는 걸 선포해서 바른말 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서
두들겨 패고 구속시켰습니다.
그 당시 형은 서면서림 직원이었습니다.
형은 독서가였습니다.
특히 시를 좋아했습니다.
김수영, 신동엽, 김지하….
시국 관련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나라가 암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태일 분신 사건도 있었고, 동일방직 사건도 있었고, YH 사건도 있었습니다.
형은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형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금서가 된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을 집에서 몰래 필경해서
등사기로 밀어서 유인물을 만들어 서점에 오는 청년·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시인 이산하도 고등학교 때 서면서림을 은밀하게 들락거렸습니다.
후일 그는 황선용 형을 ‘의식화의 스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진걸, 남성철도 이때 알게 되었습니다.
형은 문화 레지스탕스 운동만으로도 훌륭한 일을 하셨는데 기어이 행동에 나섰습니다.
부산대 이진걸 학생이 시위를 제안했고 우여곡절 끝에 형은 이진걸과 함께 여관방에서 등사기를 밀었습니다. 등사기는 형이 가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부산대 10.15 사건으로 형은 동래경찰서에 연행됐습니다.
수사당국은 형을 간첩으로 몰아가려고 했습니다.
형은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투신자살을 시도했습니다.
10.26 후 형은 석방되었습니다.
나중에 형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라는 증서를 받았습니다.
형은 회사 직원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가족을 건사했습니다.
저와 형과의 첫 번째 인연은 동래경찰서였습니다.
형은 고문에 못 이겨 정광민에게 비자금 5만 원을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동래서 형사에게 취조를 받으면서 황선용이란 이름을 알았습니다.
석방 후 한참 지나 서면에서 만나 형이 근무했던 서면서림이 있던 곳을 찾아간 적도 있었습니다.
40년 세월이 지나 부마항쟁이 일어난 10월 16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저가 대표를 맡고 있던 ‘10·16부마마항쟁연구소’가 부마항쟁 40주년 기념문집 발간을 기획했습니다. 특집으로 좌담을 했는데 형도 패널로 참가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여럿이 찍었던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그 좌담은 <다시 시월 1979>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형이 좋아했던 책으로 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책에서 형의 이야기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 후에도 형을 몇 번 만나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4, 5년 년 전이었나요.
형이 김해에서 청도로 이사를 했다고 연락했었지요.
야외에서 화로를 놓고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좋으니 꼭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셨지요.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가지를 못했습니다.
올해 초 전화를 받았습니다.
혈액암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했는데 상태가 좋다고 말씀하셨지요.
목소리가 밝았습니다.
건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형의 별세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름으로 조화를 보내고 여러 사람들에게 부고를 알렸습니다.
김형로 시인과도 연락이 닿아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우리들은 제단 뒤의 영구를 향해 큰절을 두 번 올렸습니다. 형수님과도 인사를 했습니다. 자제분들도 뵈었습니다.
퇴원 후 전화를 받고 청도로 한 번 갔어야 했는데….
갑작스런 형의 별세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문화 레지스탕스이자 행동가였던 형은 큰 일을 하셨습니다.
나라가 민주화가 되고 이만한 자유를 누리는 것도 형의 희생과 노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겠지요.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정광민 올림
** 어디에도 고 황선용 형의 추모사가 없어 저라도 하나 써서 남기려고 이 글을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