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바다를 잊은 적 없다

김형로

흐르는 강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힘이 부칠 때

강은 때때로 몸을 숨긴다

사람들은 강이 사라진 곳에서 기다리지만

강은 혼자 잠행한 뒤

홀연히 저 앞에 나타나 숲을 이끈다

더 단단한 힘을 모으기 위해

바닥보다 더 깊고

더 캄캄한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바다를 잊은 건 아니다

암울한 시대의 강은

죽은 듯 오랫동안 잠을 자기도 한다

사람들이 잊어버렸을 즈음

강은 몸을 일으켜 용솟음친다

천둥소리 벌물로 질주한다

강을 본 사람들은 스스로 강물이 되고

그때 강은 바다를 버린다

시월의 성난 강물도

이곳 새벽벌에서 국제시장과 남포동으로 휘몰아쳤다

유신의 성을 하나 둘 무너뜨렸다

골목마다 거리마다

밀려왔다가 밀려나가고 모였다가 흩어졌다

거대한 파도가 되어 독재의 부역자들을 쓸어내렸다

사람이 강물이 되면 바다가 열린다

시월은 다시 흘러 오월에 붉게 솟아올랐고

오월은 유월로, 유월은 촛불로

땅 위에 바다를 만들었다

더 푸른 사람의 바다로 흘러갔다

보이지 않는다고

바다가 강을 잊은 적은 없다

사람이 강이 될 때

바다는 출렁, 사람에게로 흘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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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로

경남 창원 생. 부산대 경제학과 졸업. 201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미륵을 묻다」 등. 제9회 제주4.3 평화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