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16일, 이날 금정산 산자락의 새벽벌은 푸르렀습니다.

저는 15일 오후, “학내에 유인물이 뿌려졌다. 시위는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와 학우들은 운죽정에서 즉각 다음날의 시위를 결의하고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유인물 인쇄에 필요한 등사기는 부곡동의 학우로부터 빌렸습니다.

경제학과 동기인 한 학우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친의 줄판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세 사람이 15일 밤 우암동 다락방에서 선언문 문안을 검토하고 등사 작업을 했습니다. 한 친구는 일찍 집으로 갔고. 나와 다른 친구 둘이서 새벽 세 시까지 작업하여 300장의 유인물을 등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저나 학우들은 고학년생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니었습니다. 고작 대학 2학년생이었지요. 운동권조차 시기상조라고 했던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서 이들이 유신독재에 맞서 싸울 용기를 냈다는 것이 첫 번째 기적이고요.

제가 유인물을 가방에 넣고 교문(신정문)을 통과한 시간은 오전 9시였습니다.

상대(현 자연과학관) 앞 벤치에 도착한 시간이 9시 10분.

여기서 한 2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온다고 한 학우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9시 40분경 저는 화폐금융론 수업이 있는 인문사회관(현 제1사범관) 306호로 달려가 유인물을 나눠주고 학우들을 이끌고 상대 앞으로 결집했습니다. 학우들은 '우리의 소원은 자유'를 부르면서 대오를 형성했습니다. 학우들은 '유신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면서 미라보다리를 지나 도서관 쪽으로 행진했습니다. 저는 시위대의 맨 앞에서 유인물 이면지에 쓴 <자유>를 두 손으로 치켜들었습니다. 부산시경은 상대생이 시위를 시작한 시각을 오전 9시 53분이라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10월 16일 부산대 최초의 시위였습니다.

처음에 오십 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짧은 시간에 수백 명, 수천 명의 시위로 불어났습니다. 부산대에서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유신대학이라 조롱을 받던 부산대 학생 수천 명이 데모에 가담했다는 사실. 이것이 두 번째 기적이었습니다.

부산대 학생들의 유신에 반대하는 반독재 투쟁 의지는 하늘을 찌를듯했습니다.

시위 학생들은 대운동장을 꽉 채웠습니다.

학생들은 부산대 구정문과 사대부고 담벼락을 허물고 교외로 진출했습니다.

부산대 학생들이 달려나간 도로가 올해 '10.16부마민주항쟁로'로 지정되었습니다.

부산대에서 비프광장까지는 20km입니다. 부산대 학생들은 마치 마라톤 선수처럼 부산대에서 산업도로로 온천장으로 동래경찰서로 미남로타리로 교대앞으로 서면으로 부산역으로 남포동으로 달려갔습니다.

민주화의 횃불을 들고서.

부산대 학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적인 시위로 독재에 반대했습니다. 경찰이 연행하면 잡혀갔고 곤봉을 휘두르면 맞았습니다. 부산대에서 남포동까지 20km를 이동하여 시민 속에서 시위의 불꽃을 점화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기적이었습니다.

부마항쟁은 부산대 학생의 역할이 대단히 컸습니다. 일부에서는 구속자 숫자를 가지고 학생들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완전한 오독입니다. 마산의 10.18 혹은 광주의 5.18 그리고 부산의 10.16과 비교해보면 연행자 중 학생의 비중이 제일 많았던 곳은 부산이었습니다.

부산대 학생들의 반독재 자유정신이 민주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1979년 10.16 이후 5.18이 있었고 6.10민주항쟁이 있었습니다.

만시지탄입니다만 부산대 10.16기념일 제정을 계기로 10.16의 역사가 올바르게 계승, 발전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끝으로 10.16기념일을 제정에 힘쓰신 차정인 총장님과 훌륭한 경축 콘서트를 기획‧연출하신 박은주 예술대학 학장님, 부산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총학생회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23년 10월 13일  정광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