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부마항쟁 기념사업의 새로운 과제

정 광 민(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

1. 지금까지의 부마항쟁 기념사업: 회고와 반성

10·16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부마항쟁 발생일로부터 40년 만이다. 1979년 시월항쟁의 횃불을 처음 들었던 사람으로서 감개무량하다. 마음 속속들이 기쁨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돌아보면 아쉬움이 없지 않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1970년대 말 이후 동시대의 세 민주항쟁 중 가장 늦었다. 5.18은 1997년에, 6.10은 2007년에 각각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10.16은 6.10에 비해 12년, 5.18에 비해 22년이나 늦었다. 부마항쟁은 세 항쟁 중 시기적으로 가장 앞섰지만 기념일의 제도화란 면에서는 역사의 지각생이 되었다.

부마항쟁은 왜 역사의 지각생이 되었을까? 부마항쟁은 오랫동안 <잊혀진 항쟁>이었다. 1989년 이후 부마항쟁 기념사업이란 것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마항쟁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졌다. 부마항쟁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몇 십 배는 더 많을 것이다. 수년 전 한 조사에 의하면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5.18은 알아도 10.16은 모른다고 했다. 10.16의 발원지인 부산대조차 이런 실정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문제점은 이렇다. 첫째는 역사적 정체성 문제이다. 10.16 부마항쟁은 5.18로 이어지면서 연속하는 역사적 사건의 서막이었다. 부마항쟁이 없었다면 5.18도 없었고 6월 항쟁도 없었다. 한홍구 교수가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부마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디딤돌이었다.

지역적인 맥락에서 보건대 부마항쟁은 부산의 고유한 역사적 자산이다. 부산의 역사적 정체성을 묻는다면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부마항쟁이라고 생각한다. 부마항쟁은 1980년대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원형이었다. 부마항쟁은 부산의 6월 항쟁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마항쟁을 하대했다. 그들은 역사적 자산으로서의 부마항쟁의 고유성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不明 상태였다. 부산에 부마항쟁기념관 하나 없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역사적 정체성을 가질 수 없는 문화적 풍토!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둘째는 ‘포괄적’ 기념사업론의 문제이다. 부산의 부마항쟁 기념사업에서 일대 사건은 기념사업회의 ‘명칭 변경’ 사건이었다. 1989년 기념사업회 출범 당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란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초창기 기념사업회의 명칭은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였다. 그런데 어느 날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란 간판은 없어졌다.

새로 간판을 단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부산지역 민주화운동 전체를 기념하는’ 단위로 변질되었다. 달리 표현하면 부산판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보수산에서 깃발을 올린 것이다. 이때부터 부산에서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여러 민주운동 기념사업의 하나로 되었다. 4.19. 5.18. 6.10. 부마항쟁. 그리고 여타의 기념사업들…….

이것이 이른바 포괄적 기념사업이란 것이다. 포괄적 기념사업은 부마항쟁을 매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부산의 고유한 역사자산 혹은 상징적인 역사브랜드가 묻혀버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부산에서 ‘부마항쟁’이란 간판이 내려졌다는 것은 두고두고 심중한 문제였다.

셋째는 항쟁의 주역들을 주체화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 부마항쟁 관련자들은 지난 40년간 자신들의 조직조차 변변하게 꾸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당한 기간 동안 부마항쟁법 하나 제대로 없었고, 진상규명은 지체되었다. 부마항쟁 피해자들은 점점이 산재하면서 각자도생하는 처지에 있었다. 지난 40년간 어떤 기념사업이든 항쟁의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참여한 경우는 드물었다. 부마항쟁의 주역들은 다수가 소외되었다.

2. 국가기념일 지정이 의미하는 것

부마항쟁은 민주화 관련 국가기념일로서는 7번째다. 3.15를 비롯하여 최근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28이나 3.8은 넓은 의미에서 4.19와 관련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4.19 계열의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4개이다. 4.19 계열 이외로는 5.18, 6.10, 부마항쟁이 있다. 문재인대통령의 헌법 전문 개정안에 포함된 5.18과 6.10 그리고 부마항쟁까지 모두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이다.

지금까지 10.16 부마항쟁은 일부의 사람들 사이에서 4대 민주항쟁의 하나로 이야기되어왔지만 실제는 달랐다. 민주항쟁으로서의 역사적 평가, 제도적 기반, 그리고 관련자에 대한 예우라는 점에서 부마항쟁은 4대항쟁으로서의 내실을 갖지 못했다. 부마항쟁은 ‘창밖의 남자’였다. 4대항쟁이라고 하기에는 존재감이 약했다.

      <표1> 민주화 관련 국가기념일 현황

	기념일	날짜	주관부처	지정연도
4·19	4·19혁명기념일	4. 19.	국가보훈처	1973년
	►2·28민주운동기념일	2. 28.	국가보훈처	2018년
	►3·8민주의거기념일	3. 8.	국가보훈처	2018년
	►3·15의거기념일	3. 15.	국가보훈처	2010년
5·18	5·18민주화운동기념일	5. 18.	국가보훈처	1997년
6·10	6·10민주항쟁기념일	6. 10.	행정안전부	2007년
	부마민주항쟁기념일	10. 16.	행정안전부?	2019년

이런 상황에서 10.16이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부마항쟁의 위상을 제고(提高)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무엇보다 부마항쟁은 전국성(全國性)을 가지게 된다. 기념일 지정 이후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전국적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부산, 창원(마산)만이 아니라 광주에서도 서울에서도 부마항쟁 기념사업을 개최할 수 있다.

부마항쟁은 시민학생의 직접 행동이 만들어낸 반유신의 민주화운동이었건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의 역사로서 잊히고 말았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잊어버린 대한민국의 역사를 찾는 일이다. 잊음에서 기억으로! 그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나라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념일 제정의 참된 의미일 것이다.

3. 부마항쟁 기념사업의 새로운 과제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대체로 ‘부마’ 없는 부마기념사업이었다. 부마관련자들은 어쩌다가 민주공원에 가보고는 크게 실망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은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마를 느낄 수 없었다.”

‘부마’라고 하는 것은 항쟁의 주역들이 갖는 ‘부마의 기억’일 터이다. ‘부마’가 없다는 것은 10.16 부마항쟁의 ‘주체’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사자들이 느끼는 ‘시월정신’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에서 포괄주의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부마항쟁은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부산의 고유한 역사브랜드이다.

이제부터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10.16’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부마항쟁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부산에 부마항쟁기념관이 하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혹자는 민주공원이 있지 않는가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민주공원은 포괄적인 시민교육의 공간이지 부마항쟁기념관이 아니다. 또 혹자는 부산대의 10.16기념관을 떠올릴지 모르는데 현재의 10.16기념관은 구 대학극장의 간판을 바꾸어단 것에 불과하다. 부마항쟁기념관으로서의 내용물은 거의 전무하다. 우리는 범시민적인 10·16기념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야기한다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민주화운동은 모두 독립적인 기념관을 가지고 있다. 기념일 지정이 비교적 오래된 5.18이나 3.15는 각각 국립묘지가 있고 기념관도 있다. 2.28은 기념일 지정 이전에 국비를 투입하여 기념회관을 건립한 상태이다. 3.8은 현재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둘째. 부산광역시 차원의 각종 ‘10.16 조례’가 제정되어야 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부산에 10.16 조례는 없다. 민주화 관련 조례로서는 1999년에 제정된 「부산민주공원 설치 및 관리·운영 조례」가 유일했다. 그리고 2017년에 「부산광역시 민주화운동 기념 및 정신계승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었다. 18년 만에 비로소 새 조례가 만들어졌는데 이 또한 포괄주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조례의 명칭에 10.16은 없다.

다른 자치단체와 비교해보면 부산시 자치조례의 ‘역사적 낙후성’을 알 수 있다. 광주광역시에는 5.18 조례가 14개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는 10개의 4.3 조례가 있다. 2.28이나 3.8민주의거와 비교하더라도 부산은 정체성이 약하다. 대구광역시는 「2.28 민주운동 사업 조례」가 2005년에 제정되었다.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대구시는 올해 2.28 조례를 ‘전부개정’ 했다. 대전광역시는 국가기념일 지정 이전인 2009년에 「3.8 민주의거 기념 조례」를 제정했다.

셋째. 부마항쟁 관련자가 기념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산에서 부마항쟁 기념사업은 오랫동안 ‘부마 없는 부마기념사업’이었다. 수십 년 간 부마항쟁 관련자는 ‘객(客)’이었다. 그것도 초대받지 못하는……. 초대장을 받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다가 기념사업 행사장에 가보면 무슨 의원이요 무슨 명망가요 하는 사람들이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정작 관련자는 좌석도 없이 서서 눈만 멀뚱거리다가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다. 부마항쟁 기념사업의 주인은 운동기득권 층이었다. 그야말로 주객전도였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4. 제언

10·16부마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연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잊혀졌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대한민국의 역사로서 부마항쟁의 위상을 찾는 전환적인 조치이다.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다.

이 귀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의 하나로서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마항쟁 기념사업의 ‘주체’를 정비해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주체는 <10·16기념사업위원회>이다.

10·16기념사업위원회는 부산의 부마항쟁 기념사업을 꾸리는 조직 주체다. 여기에는 부산의 정·관·재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부마항쟁 관련자가 주요 구성원으로서 참여한다. 10·16기념사업위원회는 ► 10·16기념관 건립 ► 10·16 조례 제정 ► 시민교육으로서 부마항쟁 교육프로그램 개발 추진을 주된 임무로 한다.

새로운 기념사업의 주체로서 필자가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 층은 부마항쟁 관련자이다. 올 연말이면 관련자 인정을 받는 사람은 300명 내외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부마항쟁 관련자 모임> 같은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이 부마항쟁 기념사업의 주체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출처: <다시시월 1979>, 산지니,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