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성환 소장의 부마항쟁 기념사업론을 비판한다!

올 초 자료를 검색하다가 <민주항쟁 기념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우연히 접했다. 차성환 소장이 쓴 글이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최인호 의원이 주관한 국회토론회에서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발표했는데, 차 씨의 글은 필자의 글에 대한 일종의 반박문이었다.

차 씨는 국회토론회에서 필자가 주장한 부마항쟁 기념일 제정 혹은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부정론으로 일관했고, 이에 대해 부마항쟁 관련자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위 글이 국회 토론문을 보완한 것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비판적 의견을 수렴한 흔적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부정론이 더 강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차 씨의 부정론은 새로운 부마항쟁 기념사업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부정하는데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가 거둔 성과라면 자신의 완미함을 세상에 드러내고 말았다는 점일 것이다.

아래에서 차 씨의 소설(所說)을 검토해보자. 차 씨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최근 일부 부마항쟁 관련자가 부마항쟁 기념사업의 국가기념일 제정과 (민주항쟁기념관과 별도의) 부마항쟁기념관을 건립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차 씨는 필자의 새로운 부마항쟁 기념사업 주장을 ‘일부’ ‘부마항쟁 관련자’의 주장이라고 했다. 글의 서두가 참으로 묘하다. ‘일부’라는 말은 흔히 쓰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난다.

‘일부’를 애용한 인물을 꼽자면 역시 박정희 대통령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수만 명이 참가한 부산의 10월 민주화운동조차도 “지각없는 일부 학생들과 불순분자들”의 소행이라 매도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바로잡자면 ‘ 다수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민주투쟁을 벌인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일부’론은 사실을 고의적으로 축소·왜곡하고 부정할 때 쓰는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권위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일부’론은 아(我)와 피아(彼我)를 구분한다. 그들이 문제로 삼는 것은 내편인가 아닌가이다. 내편이 아니면 남이다. 남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중요하지 않다. 남은 우리(我)와 격절되어야 할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피아는 사실상 부정의 대상이다.

차 씨는 분명히 필자의 글을 반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필자의 발표문도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차 씨는 필자를 ‘일부 부마항쟁 관련자’ 혹은 ‘부마항쟁기념관을 새로 만들자는 관련자’로만 표기했다.

타인의 글을 비평의 소재로 삼을 때는 필자와 제목을 밝히는 것이 상례이다. 국회토론회라는 대단히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된 글인데도 차 씨는 왜 필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까? 차 씨는 아(我)가 아닌 피아(彼我)를 실명으로 밝힐 필요가 없었을까?

오늘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부마항쟁 기념사업(=국가기념일 제정과 기념관 건립)은 다수의 관련자, 시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차 씨의 ‘일부’론은 사실과 배치된다. 그는 발표자조차 익명으로 처리했다. 이는 새로운 기념사업론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축소·왜곡하고자 하는 덧없는 욕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원초적 저항성을 탈각시킨다?

차 소장은 부마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데 대해서는 필요한 일이라고 운을 떼고는 있다. 그러나 긍정론은 이것이 전부다. 이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국가기념일 제정이 있게 되면 그에 따르는 난점도 존재한다. 이런 점에 대한 고려와 대책이 있어야 한다.

차 씨는 난점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그가 말하는 난점이란 탁상공론에 가까운 이야기여서 도대체 무얼 고려해야 한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나씩 문제를 짚어보자.

첫째. 차 씨는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도 오래전부터 논의와 주장이 있어 왔다고 말한다. ‘논의와 주장이 있어 왔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기념일 제정이 하나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정리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정말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과거 김재규 이사장이 2013년 10·16 기념사에서 “부마민주항쟁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무엇인가? 이사장이 10·16 기념식에서 한 발언은 공식적인 입장이 아닌가? 이사장의 발언조차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단 말인가?

둘째. “다만 기념일 제정 이전에 우리가 성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차 씨의 말대로 성찰할 문제가 있다면 2013년 전후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지금 와서 무슨 성찰을 계속 하자는 것일까?

셋째.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해 국가기념일이 정해지면 그 기념사업은 국가의 행사로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국가기념일이란 정부 주관 기념일을 의미한다. 즉 정부가 나서서 기념식과 그에 부수되는 행사를 전국적인 범위로 행하거나 주간이나 월간을 설정하여 부수 행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올해 처음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28은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기념식을 가졌다. 국가보훈처가 2·28을 주관한다고 해서 뭐가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국가기념일이 제정되더라도 관련단체가 주최하는 별도의 기념사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넷째. “국가의 공식적 기억이 자리 잡으면 사건의 원초적 저항성이 탈각되기 쉽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공식적 기억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2·28, 3·15, 4·19, 5·18, 6·10 등 수많은 정부 주관 기념식을 지켜보아왔지만 국가의 공식적 기억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원초적 저항성이란 또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초적 저항성의 탈각을 이유로 기념일 제정이 어렵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 이는 국가의 공식적 기억으로 되는 것인가? 그리하여 5·18의 원초적 저항성은 탈각되는 것인가

다섯째. “우리가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목적은 부마항쟁 자체를 공식적 지위에 올려놓는 것에 있다기보다 부마항쟁의 정신, 저항성을 항상 살아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가면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차씨가 말하고 싶은 건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국가기념일 지정을 추진하는 것은 기념사업의 제도적 기반 측 인프라를 갖추자는 것이다. 몇 년 전 전남대 학생과 부산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부산대 학생은 5·18은 알아도 대다수가 10·16을 모르고 있었다. 부산사람들조차 10·16은 ‘잊혀진 항쟁’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런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한 것은 기념사업의 ‘제도적 기반’의 차이에 기인한다. 민간단체 주축의 기념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마항쟁 기념사업도 전국적인 제도화가필요하다. 한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도적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그럴 때 부마항쟁 정신도 제대로 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국가기념일 제정에 있어서도 굳이 따진다면 장단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다고 생각된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충분히 조정 가능하다. 차 씨의 주장에서 국가기념일 지정을 부정할만한 논거를 찾기는 어렵다.

가만히 있으라!

차성환 소장은 부마항쟁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상한 반대론을 전개하고 있다. 차 씨의 기념관 반대론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의 주장은 오만과 독선, 아집과 궤변으로 가득 차 있다. 필자는 차 씨의 반대론을 보면서 오히려 확신을 가졌다.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은 정당한 요구다!

이제부터 차 씨의 기념관 반대론을 하나씩 검토해보자.

첫째. 차 씨는 부마항쟁기념관 건립 이야기에 혼비백산한 듯하다.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횡설수설이다. 차 씨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지난 30년 가까이 부산의 민주화운동세력이 합의하고 협력하여 수행해 온 기념사업의 방식을 부정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부산의 민주화운동세력이 합의하고 협력하여 수행해 온 기념사업의 방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들의 기념사업을 부정한 사실이 없다! 필자는 그들이 수행해온 기념사업 중 부마항쟁과 관련된 일부를 비판했고 그들이 하지 않고 있는 사업을 제안했을 뿐이다. 어째서 필자가 그들의 기념사업 방식 전체를 부정했단 말인가. 차 씨가 무리를 해가면서 이야기를 이렇게 푸는 것은 일종의 울타리 치기다. 기념사업은 우리들이 독점적으로 해온 사업이란 말이여! 느그들은 가만히 있으라 이 말이여!

차 씨는 자신들의 기념사업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부산의 민주화운동세력은 1989년 8월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결성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부마항쟁 관련자만이 아니라 부산지역의 다양한 항쟁과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참여하였다. 다시 말하면 부산은 처음부터 민주화운동세력이 단체의 명칭과 관계없이 기념사업에 동질적인 연대감을 갖고 함께 했던 것이다. 그리고 1994년에는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고 1997년 1월에는 기념사업의 범위를 넓혀 부마항쟁 외에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4월혁명, 5·18항쟁, 6월항쟁 등 과 그 밖의 여러 민주화운동을 함께 기념하는 사업을 하기로 하고 명칭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로 변경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지역사회의 동의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렇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부마항쟁을 비롯한 부산의 민주화운동 전체를 포괄적이고 통합적으로 기념하는 단일한 기념사업공동체로서 근 30년을 이어왔다.

차 씨는 높은 울타리를 치기 위하여 30년 역사說을 들고 나왔는데 그가 꺼낸 꼬챙이는 약하고 군데군데 썩었다. 조그만 바람이 불어도 울타리는 쓰러질 것 같다.

회고하면 필자는 1989년 부마항쟁 10주년을 맞이하여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창립을 제안하고 이사로 참여했다. 분명한 것은 기념사업회 창립에 있어서 부마항쟁 관련자들이 주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차 씨는 기념사업회 결성의 주체가 부산의 민주화운동세력이었다는 것을 단언하고 부마항쟁 관련자는 그 일부였다고 주장한다. 차씨가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산의 민주화운동세력이다. 이것은 사실관계의 중대한 왜곡이다. 당시 부산의 주류 세력은 기념사업회 창립에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냉소적인 분위기조차 있었다. 필자가 기념사업회 창립을 위해 동분서주할 때 지역의 이름난 어떤 인사는 “그런 걸 왜 만드는데…”라고 반문하기조차 했다. 역사를 말하려면 올곧아야 한다. 허위는 또 다른 허위를 낳는다. 차 씨는 다시 허위를 말하고 있다.

차 씨는 기념사업회의 명칭 변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대목은 주의해서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명칭 변경은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라 부마항쟁 문제 해결의 주체 혹은 정통성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살펴보자.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사단법인으로 전환한 시점은 1994년 4월이고 명칭 변경 시점은 1997년 1월이다. 명칭 변경 시점은 사단법인으로 전환한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사업회 측은 왜 멀쩡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간판을 버렸을까? 사업회 자료는 이런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기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경험에 비춰볼 때 4.19혁명, 부마항쟁, 6월항쟁 등 부산지역에서 일어났던 제 민주항쟁 전반을 기념, 계승, 총괄할 수 있는 성격의 단체가 필요하다는 대내외적인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걸 알기 쉽게 말하면 이렇다. 부산에 부마항쟁만 있냐. 4·19도 있고 6월항쟁도 있는데 왜 하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인가! 부마 간판을 내리자! 그리고 간판을 새로 달자! 이렇게 된 것이다.

차 씨는 명칭 변경이 지역사회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는 허구적인 주장이다. 위 자료에서는 명칭변경이 ‘대내외적인 요구’에 따른것이라고 했다. 요구와 동의는 같은 것일까? 상식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요구와 동의는 다른 것이다.

자료의 인용처럼 설령 외부의 요구가 있고 이를 내적으로 수용하고 그리하여 의결기구를 통해 명칭 변경이 가결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걸 두고 지역사회의 동의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 왜 그런 것일까

첫째. 명칭 변경의 사유가 부마항쟁 관련자의 요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명칭 변경의 목적이 "부마민주항쟁을 중심으로 보다 폭넓게 부산지역의 제 민주항쟁을 기념·계승하"는데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부마항쟁을 중심으로 한다면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라는 간판을 그대로 두고 부산지역의 여러 민주항쟁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4·19행사도 할 수 있고 5·18행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명칭 변경과 관련하여 총회 등 절차를 언급하였는데 이는 지극히 형식적인 언설이다. 정광민 이사를 비롯하여 부마항쟁 동지들이 다수 있었지만 명칭 변경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만들었던 핵심층은 10·16 관련자였다. 정작 이 단체 출범의 모태이자 주인공이었던 10·16 관련자들은 다수가 명칭변경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어 있었다. 정광민 이사는 부마항쟁 간판이 내려질 때 일본 교토대학 석사과정 유학 중이었다. 이 건으로 정 이사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도 못했고 협의를 한 사실도 없다. 이사 명부에서 일방적으로 이름이 삭제되었다.

부마항쟁 관련자로서 기념사업회의 창립을 이끌었던 인사에 대해서 사업회 측이 얼마나 비열한 행위를 했던가! 뒤통수도 이런 뒤통수가 있을까?

명칭 변경 사건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다시 이 사건을 정리하면 이렇다. 명칭 변경 사건은 두 가지 계기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하나는 민주공원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6월항쟁 1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

1994년 사단법인 등록 후 기념사업회는 ‘6월항쟁자료발간위원회’라는 특위를 설치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내에 ‘6월항쟁특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란 명칭으로 6월 항쟁 기념사업이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갑자기 명칭 변경이 단행되었다. 1997년 초. 그해 6월에 6월 항쟁 10주년 기념사업이 있었고 10월에는 민주공원 착공식이 있었다.

명칭 변경은 대단히 인위적인 것이었다. 누군가가 계속 뽐뿌질을 해댔다는 이야기다. 민주공원 개관을 앞두고…. 그 중 하나가 ‘6월항쟁자료발간위원회’였다. 1994년 이후 기념사업회는 6월항쟁 세력에 의해 사실상 장악되었다. 부산 주류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강탈사건 혹은 쿠데타. 이것이 명칭 변경 사건의 본질이었다.

‘새로운 길’을 허하라!

차 씨는 또 이상한 말을 지어내고 있다.

“부마항쟁기념사업을 왜 별도로 하지 않느냐고 비난한다.”

필자는 이와 같은 말을 한 사실이 없다. 별도(別途)는 원래의 것에 덧붙인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원래 하고 있는 기념사업이 있는데 괜히 딴 살림 차리려고 그러냐는 이야기다. 필자가 가려는 길은 별도(別途)가 아니라 새로운 길(新途)이다.

부마항쟁기념관은 전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롭게 기념관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길이다.

윤동주의 <새로운 길>이란 시가 있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필자는 나의 길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

그대들이 익숙한 구도(舊道)가 있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대들이 좋아하는 구도를 열심히 가시게나.

나는 새로운 길을 가고 싶네.

아가씨 지나고 바람이 이는 새로운 길을….

기득권에 포박된 자의 망언

차 씨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에 속한다. 그는 필자의 새로운 기념사업론을 부정하기 위해 최대한의 공세를 펼쳤지만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의문이다. 그의 공격은 선무당의 마구잡이 칼질에 지나지 않았다. 차 씨가 얼마나 엉터리로 칼질을 해댔는가는 ‘당사자 특권화’ 운운에서 절정에 달한다.

물론 당사자는 정당한 예우와 보상을 받아야 하나 그것을 넘어서 특권화하는 것은 기념사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다. 부마항쟁기념사업을 별도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관련자는 기존의 기념행사에서 부마항쟁 관련자가 참된 주인공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는 부마항쟁 당사자가 다수 참여하고 있고 그 외의 다양한 항쟁이나 민주화운동에참여한 관련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참여하고 있다. 부마항쟁 당사자만 특권적으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참된 주인공’ 이야기는 10·16부마항쟁연구소의 부마항쟁 38주년 기념사에 나오는 구절이다. 필자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희들이 갖는 부마항쟁 기념행사는 부마항쟁 관련자들이 이 행사의 주체라는 점에서 대단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3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산에서 관련자가 기념행사의 참된 주인공이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관련자들은 하나의 피동적인 대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기념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하는 일에 부마항쟁 관련자가 참여해서 결정하는 구조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념행사는 늘 우리가 아닌 ‘그들’이 좌지우지해왔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부마항쟁의 주요 관련자임에도 초청받지도 못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부마항쟁의 역사조차도 우리가 아닌 ‘그들’의 시각으로 기술되었고 많은 부분이 왜곡되었습니다. 또한 부마항쟁의 피해자를 찾아내고 그들을 연결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일도 소홀히 진행되었습니다. 법 문제도 있습니다만 구조적으로 이와 관련된 내부의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부마항쟁은 지금까지 홀대받아왔습니다. 과거 이 지역에서 대통령이 두 분이나 배출되었습니다만 부마항쟁법 하나 만들지 못했습니다.

부마항쟁 관련자가 얼마나 홀대받아왔는가를 말한 것이다. 주인공 이야기를 이렇게 왜곡할 수 있는가? 여기에다 특권이라니? 특권이 있으면 좀 나누어가졌으면 좋겠다. 도대체 무슨 특권이 있다고 특권화 운운하는 것인가?

특권이라면 차 씨야말로 누릴 것 다 누린 자가 아닌가? 민주공원 관장을 누가 다 차지했나? 차 씨는 민주공원에서 실장에다 관장까지 도대체 몇 년이나 그 자리에 있었나? 거기다 최근 부마항쟁위원회 상임위원까지 꿰차지 않았는가? 부마와 관련하여 노른자위는 죄다 차지한 자가 누구인가?

부마항쟁 관련자도 아닌 자가 부마전문가 행세하며 좋은 자리 다 차지한 것이 특권이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언제 관장을 했나 상임위원을 했나. 왜 필자에게 특권화 운운하는가? 부마로 밥 먹고살고 입신 출세한자가 누구인가? 차 씨 같은 자가 그늘에서 신음하는 부마항쟁 관련자에게 입에 담을 말인가!

후안무치도 유분수고 배은망덕도 유분수다.

필자가 박정희기념관을 짓겠다고 했는가.

부마항쟁기념관을 건립하자는 것이 어째서 특권화인가.

박정희 지지자도 함부로 이런 말을 하지 못한다.

하물며 부마항쟁으로 밥을 먹고 사는 인간이 어찌 이런 망언을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차 씨의 주장은 단 하나. 기념사업은 우리가 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너희가 하는 것은 특권화다. 차 씨는 기념관 건립은 반대하면서도 슬쩍 사료관 건립을 끼워 넣고 있다. 차 씨야 말로 자신들의 기득권에 포박된 자이다.

역사의 진실을 따르는 자라면 부마항쟁기념관 건립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 『시월의 노래』(2019)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