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하기
시월길 탐방 부산의 역사를 찾아 한국 민주화의 길 10·16과 세계
부산의 역사를 찾아
조회수 170
제목 부산시민의 날,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부산시민의 날,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1980년 9월 10일 손재식 부산시장은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 해전 승전일(양력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지정·공포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것은 8월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두환 정권 출범 직후 부산시민의 날이 제정된 것입니다.

 

그해 부산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한해 전 부산에서는 부마항쟁이 일어났습니다. 1980년에도 부산은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봄’ 기간 부산의 대학가에서도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5월에는 광주항쟁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많은 시민 학생이 삼일공사(보안대 부산분실)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부산지역 학생운동의 리더들이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경제 사정도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1980년 5월 동명목재 3,000명의 노동자들이 회사의 휴업 철폐를 요구하며 농성 투쟁을 벌였습니다. 1980년 6월 동명목재 그룹은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1980년 8월 전두환 신군부는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치안 보호와 범죄자 교화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잡아들였습니다. 범죄자 외에 무고한 시민들까지 군부대 삼청교육대로 이첩되었는데 그 숫자는 4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구타 등 온갖 불법적인 인권 유린 행위가 자행되었습니다.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폭력적인 삼청교육의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부산에서도 수많은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손재식 시장은 1980년 1월부터 1981년 4월까지 부산시장으로 재임했습니다.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이 시기는 전두환 신군부가 실권을 장악하고, 권력의 정점으로 다가가는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손 시장은 특별한 업적이 없었습니다. 굳이 업적이라고 한다면 부산시민의 날 제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손 시장에게는 시민의 날보다 더 중요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틀 후인 10월 7일 부산에서는 도시고속도로(번영로) 개통식이 있었습니다. 이 행사에는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대통령 전용차에 올라 구서동에서 부두 도로까지 시주(試走) 식을 가졌습니다. 대통령 내외가 지나가는 연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동원되었습니다. 부산대교 앞 바다에는 해군사관학교의 거북선이 떠서 붉은 연막을 내뿜으며 대통령 내외의 시주를 경축했다고 합니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을 진압하고 권력을 쥔 전두환 대통령을 위한 꽃길을 부산시가 헌상한 것입니다. 이 헌상극을 기획·연출한 자가 손재식 시장이었습니다. 손재식 시장은 부산의 시민·학생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연행돼 고초를 겪고 있을 때, 동명 그룹이 강제 해산당할 때, 무고한 시민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때, 고통받는 시민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위해 손 시장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전두환의 강압 통치에 부역했습니다. 손 시장이 내건 구호였던 ‘위대한 시민, 위대한 부산’은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도시고속도로 개통식이 아주 흡족했던 모양입니다. 손재식 시장은 이후 승승장구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그는 내무차관,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부산시민의 날’ 제정 배경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부산시민의 날 제정은 이순신 장군의 부산포 해전 승전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부산시 당국이 강조했던 것은 향토애와 순국 정신이었습니다. 1980년의 시국에서 간난신고하던 시민·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향토애니 순국 정신이니 하는 말은 자신들의 처지와는 큰 괴리가 있는 용어였습니다. 부산시민의 날은 출발점부터 대다수 부산시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부산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희석시키고, 정권에 대한 순응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충분히 있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45년 전, 어두운 권위주의의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부산시민의 날이 과연 21세기 민주 부산을 대표할 수 있을까요? 낮은 인지도, 공감대 없는 행사, 그리고 퇴색된 의미는 현재의 부산시민의 날이 더 이상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는 용기 있게 과거의 낡은 틀을 깨고, 부산의 진정한 가치를 담아낼 새로운 시민의 날을 만들 때입니다.

 

하나의 대안은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하자는 겁니다.

그 외에 다른 대안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금부터 논의를 조직해갑시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시민의 날을 변경한 사례는 대구와 광주입니다.

대구시민의 날은 2020년부터 2월 21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기존에는 10월 8일이었으나,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인 2월 21일로 변경되었습니다.

광주시민의 날은 2010년에 11월 1일에서 5월 21일로 변경되었습니다. 5월 21일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의 항쟁으로 계엄군이 퇴각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끝으로 말씀드릴 것은 부산시민의 날을 변경하더라도 부산포 승전 기념일은 그대로 두고 기념사업을 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이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제안자: 정광민 (사단법인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2025년 6월 25일







첨부파일